판사는 판결로만 말한다
눈물에 관하여

경향교류(京鄕交流) 원칙에 따라 대전지방법원 서산지원 판사로 단신 부임한 것이 1993년 3월 1일. 만 3년 동안의 서산 근무를 마치고 1996년 3월 1일부터 가족이 있는 서울로 돌아왔다. 개인적으로 기쁘기 한량없지만, 서산을 막상 떠나게 되었을 때에는 그 동안 든 정 때문인지는 몰라도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먼저 이 지면을 빌려 그 동안 눈물겹도록 따뜻하게 대해준 서산․태안․당진 지역 여러 어른들께 다시 한번 고마움의 인사를 드린다. 그 동안 민사재판, 형사재판, 가사재판, 소액재판, 즉결재판 등을 담당하면서 직․간접적으로 만난 주민들에게 최선의 봉사를 하려 했으나 재판제도의 속성상 본의 아니게 어느 누구에게 눈물을 흘리게 하지는 않았는지 두려운 마음이 앞선다. 인도의 초대 수상 네루(Jawaharlal Nehru : 1889-1964)는 ‘정치는 백성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라고 하였다. 어찌 정치뿐이랴. 정치인과 행정가는 물론이고 종교인, 교육자, 의료인, 사회운동가, 언론인, 기업인 할 것 없이 남의 눈물을 닦아주는 일이야말로 보람의 근원이요 그 본질적 소명이 아닌가. 사람들은 법에도 눈물이 있지 않느냐고 하소연하면서 진정서를 낸다. 재판도 눈물을 닦아주는 일에 다름 아니다. 무슨 죄를 저지른 일로 재판을 받는 피고인을 만나는 형사법정에서는, 피고인이 살아온 환경에서 결과적으로 빚어진 것으로 보이는 죄에 대한 뉘우침의 눈물이 있는가 하면, 그의 온 가족이 그 피고인의 구속으로 인하여 흘리는 보이지 않는 눈물이 있다. 또한 반면에는 그 범죄로 인하여 정말 피눈물을 흘리는 피해자의 눈물도 있다. 나는 오늘도 피고인과 피해자가 흘린 눈물의 양을 비교하여 피고인에게 형을 선고하기도 하고 용서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재산문제로 분쟁 중에 있는 사람, 각종 피해를 입은 사람, 혼인관계가 파탄에 이른 사람들도 법정에서 수심에 가득 차 눈물 맺힌 눈으로 나를 응시하며 그 눈물을 닦아 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상대방의 눔에 맺힌 눈물과 가슴의 한과 아픔을 얼마나 잘 헤아리고 이를 어루만져 주었는가. 그렇지 못하다면 적어도 상대방의 눈에 눈물이 맺히게 하지는 않았는가. 우리 무도가 이런 잣대를 가지고 살아간다면 우리 사회는 정말 ‘살 맛 나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 남의 눈물을 닦아주려면 나도 함께 눈물을 흘릴 줄 알아야 한다. 그 첫걸음은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상대방을 배려하고 이해하는 것에서 출발하여야 한다. 그렇게 될 때 그 상대방이 흘리는 눈물의 의미를 읽어내고 어루만져 줄 수 있는 것 아닐까. 나는 남북통일의 당위성과 가능성도 여기서 찾는다. 왜 통일을 하여야 하는가. 그것은 북한 동포들이 흘리는 눈물을 닦아주고 그들의 고통을 해소해주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통일을 하여야만 한다면 통일은 가능한가. 우리 남쪽이 그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따뜻한 마음씨와 능력 및 자격을 갖추어야 비로소 통일은 가능하리라. 아무런 눈물도 없는 그런 사람이 어디 있으랴. 우리 주변에는 눈물 맺힌 눈으로 그 눈물을 닦아주기를 기다리며 우리를 응시하고 있는 숱한 사람들이 서성거리고 있다. 각자가 서 있는 그 자리에서 보이는 사람들의 눈물부터 닦아주자. <1996년 3월 서산 새너울신문 제7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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